벚꽃이 피었다
푸릇푸릇한 잎사귀가 고개를 들이밀 때쯤, 차가웠던 바람이 어느새 따스해진 걸 느끼며 문득 고갤 들어보면 분홍빛을 띈 새하얀 꽃잎이 수줍은 듯 내려다보고 있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마치 시간이 멈춘 듯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노라면 빨려들어갈 것만 같이 잠시 숨이 막힌다. 그런 벚꽃의 마력에 흠뻑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봄, 여우에게 홀리다.> 미술관에서 근무하는 여자는 근처에 나갔다가 오자키라는 여우를 데리고 다니는 남자를 만난다. 사람들의 제정신을 먹고 산다는 여우, 그런 여우와 늘 함께인 남자. 잃어버릴까봐, 또 그럴까봐 조바심 내는 여자. 벚꽃이 가득 핀 날, 뭔가에 홀린 듯 남자가 제발 있어주길 바라며 달려간다. <하얀 파편> 누구나 실수를 하고 상처를 주고 받는다. 한 여자가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조금씩 대수롭지 않게 진전된 관계는 안타깝게도 상처가 되어 끝이 난다. 벚꽃이 가득 피었는데 비가 오는 날, 남자는 우산도 없이 애인에게 쫓겨난 가스미라는 여자를 우연히 만나게 되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스미는 남자가 상처를 준 그 여자를 닮았다. 그녀는 애인에게 쫓겨나고도 당당하게 웃으며 말한다. [ 난 힘껏 사랑했거든. 후회는 없어. ] [ 바보면 안 돼? 적어도 난 겁쟁이는 아냐. 할 수 있는 만큼은 했어. 그걸로 됐다고 생각해. ] p60 <첫 꽃> 아빠는 벚꽃을 눈꽃이라 불렀다. 아빠와 헤어지고 엄마와 살게 된 이쁜 아이는 늘 이쁨을 강요받고 오디션을 보러 다니게 되고 벚꽃을 닮은 꽃집 언니를 만난다. 언니와 만나 이런저런 얘길 나누며 마침내 초경을 하게 되는데... 아이는 자연스레 깨닫는다. [ 다들 불안한 것이다. 언니도, 어머니도, 나도. 불안하고 쓸쓸해 혼자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불길할 지도 모른다. 아름다워지고 싶지만 그렇지 못하니까, 누군가가 괜찮다고 해주지 않으면 안심할 수 없는 것이다. ]p98 <엘릭시르> 마법의 묘약이라는 게 있을까?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대신인 그림자처럼 살아야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우연히 그걸 깨달은 그녀는 그게 잘못된 것인지 미처 생각지도 못한 채 위험하고도 은밀한 반항을 시작한다. 처음부터 있지도 않은, 비교대상도 될 수 없는 사람과의 경쟁이라니... [ 다른 그림이잖아? 어느 쪽이 더 낫냐 하는 문제가 아니고. ]p128 <꽃보라> 그저 맛있는 디저트를 같이 먹었을 뿐인데, 그게 국세청 직원의 조사를 받을 정도의 일인 걸까? 오시마 츠토무는 아내와 사별하고 혼자 살고 있는데 우연히 유키라는 여자를 알게 된다. 어느날 국세청 직원이라는 미야마가 찾아와 그녀에 대해 묻고 얘기하기 시작하는데... [ 무서운 게 없다면 소중한 것도 없을 것이다. 아픔이 없다는 건 기쁨도 없다는 것, 감각이 없는 세계에서 산다는 것. ]p153 그녀는 그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걸까...? <등> 푸른색 벚꽃 꽃보라 문신을 보기 위해 매일같이 대학의 종합연구자료관을 찾는 다카미네. 뭔가에 이끌린 듯 그녀의 바램을 이뤄주기 위해 그곳에서 알바중인 남자는 무리수까지 두며 여자에게 그 문신을 보여준다. 그녀는 알고 싶었고 찾고 싶었던 것이다. <벚나무의 비밀 색>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도 제법 되었는데 사키의 눈엔 벚나무 근처에서 소녀 유령을 본다. 다른 가족에게 물으니 아무도 보지 못했다고 하는데...어찌된 일일까?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부정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괴로운 일이다. 어찌할 수 없는 건 차치하고라도 때론 인정하고 받아들여야한다. 무척 많이 아프고 괴롭더라도. *** 일본 특유의 단편소설답게 은은하게 잔잔한 느낌의 이야기였다. 벚꽃이 필 때면 괜스레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듯이 이 이야기도 그런 마음을 곳곳에 담았다. 뭔가에 홀린 듯 빠져들어 마치 벚꽃이 피고 봄이 찾아온 듯한 착각에 빠져들기도 한다. 이 책에 잠시 홀렸었나보다. 추위가 물러가고 향긋한 벚꽃이 피기를, 따스한 봄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그 사람과 함께 벚꽃을 보고 싶다. 벚꽃 흩날리는 계절조금 서투른 남자와 여자의 일곱 가지 사랑 이야기벚꽃을 모티브로,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연결되는 순간을 선명하게 그려낸 벚꽃 테마 소설독특하고 감각적인 문장으로, 상실에 익숙한 청춘, 타인과 관계 맺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내면세계를 섬세하게 묘사하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는 치하야 아카네의 벚꽃이 피었다 가 출간됐다. 벚꽃은 봄의 전령이다. 봄이 찾아올 무렵, 벚꽃이 피기를 기다리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벚꽃과 함께 사랑을 떠올리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벚꽃이 피었다 는 눈처럼 흩날리는 벚꽃의 계절에 자신의 사랑을 떠올려볼 수 있는 벚꽃 테마 소설이다. 벚꽃을 모티브로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이어지는 순간을 선명하게 그려낸 이 소설집에는, 외롭고 서투른 남녀의 깨져버린 사랑을 그린 슬픈 밤 벚꽃의 이야기, 사람의 마음을 먹어 그 사람의 마음을 자유롭게 해준다는 여우 이야기, 푸른 벚꽃의 문신을 필사적으로 찾는 여자의 이야기, 죽은 할머니의 집 벚나무 그루터기에 등장하는 소녀 유령의 이야기 등 아름답고 쓸쓸한 일곱 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조용하게 집중시키는 이야기 속에 일곱 가지 벚꽃의 풍경, 일곱 가지 마음의 표정이 선연하다.
「봄, 여우에게 홀리다」 7
「하얀 파편」 39
「첫 꽃」 71
「엘릭시르」 101
「꽃보라」 133
「등」 167
「벚나무의 비밀 색」 205
작가의 말 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