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테마를 가지고 쓴 여러 작가의 작품은 다양한 시선을 만날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같은 사물의 첫인상이 저마다 다르듯 작가 고유의 감성을 느낄 수 있다고 해야 할까. 특별히 개인적인 에피소드를 들려줄 것만 같은 패션을 테마로 한 『7인의 옷장』속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들이 진짜 좋아하는 패션 아이템은 무엇일까 상상하기도 했다.김중혁이 매일 들고 다니는가방은 무엇일까, 은희경이좋아하는 운동화는 어떤 디자인일까, 정이현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감정을 덮어주는 건 어떤 소품일까, 정용준은 정말 겨울에 소설에 등장하는 그런 털모자를 쓰는 건 아닐까... 쉽게 접할 수있는 일상의 소품이라서때로 쉽게 잃어버리고 또 잊어버리는 것들이라서 그것들이 품은 이야기는 남다르게 다가온다.한국에온스웨덴의 시인 닐스가친구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여름에털모자를 구입하는 정용준의 「미드윈터」는 모자를 좋아하는 친구가 떠올랐고 은희경의 「대용품」에 등장하는 운동화는 유명 상표의 운동화를 신고 싶었던 묘한 추억을 불러온다. 명사분실증이란 다소 기이한 병명을 가진 남자의 이야기인 김중혁의「종이 위의 욕조」는 독특하면서도 재미있었다.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설명해야 할 때마다 어떤 통증을 느낄 남자와 그것을 온전히 이해하는 여자가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큐레이터로 일하는 남자와 그림을 그리는 여자의 만남처럼 자연스러운 일은 아닐 터. 남자가 잃어버린 가방이 여자를 통해 다시 남자에게 돌아오는 일도 소설에서나 가능한 일일까. 물론 회식 자리에서 일어난 일이니 현실에서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둘 사이의 어떤 교감은 허상의 이미지일 뿐 실재하기란 어렵다. 아마도 그래서 우리는 소설 속 그들의 다음 이야기를 궁금해하는지도 모른다. 7개의단편 가운데구두를 소재로 한 백가흠의「네 친구」란 소설이 유독 좋았다. 어린 시절 친구였던 소녀였던 중년이 되었고 저마다 자신의 삶에 회의를 느끼며 권태로운 일상을 이어간다. 때론 특별한 시간을 공유하며 통과해왔지만 어느 순간 그들은 서로에게 독이 되는 순간을 선물하는 친구 아닌 친구가 된다. 약속 장소에 모인 세 친구가 나누는 대화가 그러하다. 진실한 안부를 나누는 대신 타인을 의식하며 SNS에 올린 사진을 찍고, 남편의 사업을 위해 신앙은 없지만 의식적으로 교회에 나가고, 시간을 거스르기 위해 성형중독으로 이전의 얼굴을 찾아볼 수 없는그들의 모습은 욕망으로 찌든 현대인의 모습과 가장 흡사해 화들짝 놀라고 만다. 그래, 백가흠은 날카롭게 현실을 꼬집는 소설가였지. ‘시간은 지나가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차곡차곡 쌓여 사람 마음속 깊숙한 곳을 향해 탑을 쌓는다. 기억 속에 가라앉은 시간의 끝은 뽀족한 바늘처럼 생겨서 복원해내면 따끔하게 마음의 가장자리를 찌르곤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날카로운 시간의 기억을 다시 찾지 않을 만한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숨겨 놓는다. 그리곤 어디에 그 시간을 두었는지 잊어버리고선 우왕좌왕한다. 서로 사랑할수록, 서로의 시간이 많이 쌓일수록 그 끝은 심해 한가운데 버려진 바늘과 같아진다. 그 끝을 기억하지 못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왜 상처받고 상처주는지 모른 채 시간은 계속하여 흘러만 간다.’ (「네 친구」165쪽)지금도 우리는 무언가를 들고, 입고, 쓰고, 신는다. 누군가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특정한 무엇을 입고 쓴다. 누군가는 아무 의미 없이 필요에의해 기능적으로들고 신는다. 문학 속에서 그것들은 살아 움직인다. 자신을 지탱하는 정체성이 되기도 하고 지난 삶을 반추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그건 일곱 명의 작가들과 소설을 읽은 독자에게도 같을 것이다.
오늘의 문학과 지금의 패션,
두 극단의 접점을 찾는 뜻밖의 시도인 소설집 The Closet Novel
시대가 소비하는 가장 고전적인 상품(이자 예술)인 문학과, 이 시대 가장 화려한 지점을 되비추는 거울인 패션은 어떤 지점에서 만날 수 있을까. 2013년 늦겨울, 그 사소한 질문에서 이 소설집은 시작되었다. 그간 패션지에 소설과 시가 실리고 부록으로 소설집을 제공하는 등 패션의 곁에 문학을 두려는 이런저런 시도가 지속되어왔지만 패션 이라는 커다란 주제를 직접 다룬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문학과 패션이 만나는 자리에, 한국문학의 축을 담당하고 있는 은희경, 편혜영, 김중혁, 백가흠, 정이현, 정용준, 손보미, 총 일곱 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2014년 상반기 각각 들다 , 쓰다 , 신다 , 입다 라는 주제 가운데 하나를 택해 소설을 썼다. 동시에 남성 패션지 「아레나옴므+」와 이 새로운 시도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The Closet Novel은 그 결과물들을 모아 거르고 녹여낸 책이다.
이 소설집에서 소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패션을 끌어안는다. 소설은 개인의 서사를 다루는 장르이므로, The Closet Novel 속 일곱 편의 소설들은 패션의 일상 속 속성에 주목한다. 우리가 들고, 쓰고, 신고, 입는 것들로써 결핍과 상실을, 삶의 사소한 비밀들과 희미한 추억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더 클로짓 노블 The Closet Novel 영상보기 *클릭*
여는 글
박지호, 패션이라는 파사주
들다
김중혁, 종이 위의 욕조
쓰다
정이현, 상자의 미래
정용준, 미드윈터
신다
은희경, 대용품
편혜영, 앨리스 옆집에 살았다
백가흠, 네 친구
입다
손보미, 언포게터블UNFORGET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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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호, 보잘것없는 비밀들
IN THE CLOS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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